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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인생도처유상수>를 읽고

다 읽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는 그런 책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그런 책이다. 나름 짧지 않은 10년의 간극이 있었지만, 아마도 그 기간은 우리 문화의 깊은 힘과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준비를 거쳐 다시 우리에게 문화유산에 대해 때론 다정하게, 때론 격하게, 때론 안타깝게, 때론 유머를 실어, 때론 행복한 꿈을 아야기 하고 있기에, 나도 정신없이 책 읽기에 빠져 버렸다. 그러면서도 한번에 쭉 읽어 내리지 못하고 자꾸 이런저런 생각으로 쉬엄쉬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읽었음에도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자꾸 뭔가를 놓친 것 같아 쉽사리 손을 떼지 못하겠다. 어디에서든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다 시작점이고 종착점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인생도처유상수> 는 나에게 다시금 길 위에서 문화유산을 만나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래서 세상을 만나라고 한다. 그러니 책 읽기를 마쳤다면 이젠 새롭게 나 자신의 답사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자꾸 등을 떠민다. 쉽게 길 떠나지 못하는 도시민으로서는 그저 스스로 답답할 뿐이니, 다시 책을 펼쳐 저자의 발길과 말을 따라 또 느릿느릿 답사길을 나선다. 그런 반복으로라도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리니 한결 좋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경복궁"에 대해 말하고 있어, 늘 갈 수 있는 곳임에도 그리 마음 주고 본 적이 없었다는 반성과 함께 이제부터라도 경복궁 한 번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얻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왼쪽은 정본에 있는 경복궁 컬러사진, 오른쪽은 가제본에 실린 흑백사진. 컬러도 좋고 흑백도 좋다>

이전 책과 달리 이번 여섯 번째 책에서는 직접 정부 내 문화재청장으로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을 맡았던 때의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는데, 할 수 없었던 일들에서 배어나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깊게 스며있어, 따라 아쉽고 안타깝다. 우리 땅과 그 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 온 문화유산은 오늘날 누구에게라도 소중한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일진대, 이런 일은 더 긴 호흡으로 전문성과 대중성, 그리고 진정성을 담은 모두의 이해와 참여,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 행정과 실행을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이 땅과 사람들에게 진솔하고 성실로 소명을 다하는 그런 사람들을 믿고 일을 맡겼으면 한다. 그래야 과거가 현재 속에서 계속 생명력을 유지, 확장하면서 새롭고도 풍부한 내일의 우리 문화유산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 내내 그런 아쉬운 마음에 같이 아쉬워 하면서 지금부터라도 문화재 정책과 행정에 긴긴 호흡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난 해부터 참여하고 있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생각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 즉 사람에 대한 학문 전반의 위기가 말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대안이 논의되고 실천되는 가운데, 국립중앙도서관 등이 인문학 분야 책 읽기를 통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함께 전문가와 직접 인문학의 현장을 찾아 좀 더 직접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직접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다양한 관심과 배경을 가진 독자들, 인문학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전국 여러 곳의 인문학 현장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 과정에서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우리 땅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풀어가는 과정이나 결론도 결국 우리 땅과 사람, 역사와 문화유산을 만나고 이해하고 풀이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자주 이미 이 분야 고전이자 기본이 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에 대해서도 종종 이야기 할 장면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찾아다니는 인문학의 흔적과 내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땅과 사람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찾던 여러 발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년 초 산청 땅에 가서 남명 조식 선생 유적을 찾아다니던 때, 선생이 지리산을 유람한 후 책에 남기신 말씀이 내게는 내내 길 위에서 문화유산과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 지침이 되었다. “간수간산 간인간세(看水看山 看人看世)”, 물을 보고 산을 보고, 그리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라는 말을 통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고, 문화유산을 만나는 길 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을 읽으면서도 결국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진솔한 삶에서 우리는 우리 땅과 문화유산을 제대로 만나게 된다는 것. 그러한 사실을 이번 책 읽기에서도 다음의 구절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전기문학(biography)의 상실은 우리 인문학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사실 인간의 관심 중 가장 큰 것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그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은 삶의 여러 모습에서 구하게 되니 전기문학은 인문학의 유효한 전달방식이 되는 것이다. (422쪽)

이 부분에서 나는 내 일터인 도서관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서관에는 전기문학 책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을까? 서점에 가서 보면 그래도 적지 않은 전기들이 출간되고 있는데, 글쎄 그런 책들이 얼마나 읽히고 있는지, 또 도서관에는 얼마나 소장되어 있는지 매월당에 관한 책을 국가자료종합목록에서 검색을 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많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지만 역시 얼마나 읽히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유홍준 교수의 지적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도서관에서도 전기문학 책을 많이 구비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함께 읽기 등을 통해서 사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인문학이 살고, 그래야 과학과 실용 학문도 살고, 그래야 우리 사회가 좀 더 격조를 갖추고 서로 보듬어 사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도서관의 역할과 기여일 것이고, 그래야 다시금 도서관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은 샛길로 간다. 그래도 좋았다. 그런 것도 충분히 받아들여 주는 책이고, 그러다가 또 새로운 문화유산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저자는매월당 김시습에 대해서 쓰면서 우리나라 전기문학 상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창비로부터 가제본으로 먼저 받았다. 운좋게 네이버 블로그를 통한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다. 그래서 받은 가제본은 나중에 받은 책과는 또 다른 느낌. 이제 막 발굴을 마친 유적지 같다고나 할까? 오랜 만에 보는 흑백 사진과 넓은 판형! 위로 펼쳐 읽는 재미도 나름 컸다. 마치 시험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약간의 강박도 받고. 그러다가 전면 컬러로 인쇄된 책을 받아 보고서는, 화려한 현실로 복귀한 것 같은 조금의 현기증도 느껴보았다. 사실 이처럼 정식으로 책이 출판되기 전에 가제본 형태로 만들어 독자들과 만나는 기회가 더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면 그런 가제본 책만을 찾는 독자들도 생겨날 것 같다. 그러면 또 나는 그런 가제본만을 모은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꿈꾼다.

<가제본 표지와 표제지. 마치 공부를 위해 따로 만든 자료집 같아 더 정겨웠다.>


이 책을 읽고 좀 더 자세히 뭔가를 꺼내 써 보려 하는 것이 좀 무리다 싶다. 그냥 간단히 내 두루뭉술한 감상을 적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오히려 책 읽기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두 부분에 대해서만 더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 하나는 만수산 봄나물 이야기(345-348쪽)다. 우선 나물은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어, 그랬던가? 하고 되짚어 생각을 해 보니, 다른 나라에 가서 나물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그런가? 나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런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좀 더 우리 것에 관심을 ‘깊이’ 가져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그러면서 다음 구절에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만수리 나물 할머니가 지난봄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저자는 만수산 나물 맥을 어떻게 이어갈지 걱정을 하다가 만수산 무량사 입구에 작은 나물박물관 하나 세우는 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할머니들의 나물도 봄철 내내 사갈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집사람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더니 반응이 시큰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다 산나물 씨가 마르면 당신이 책임질 튀유?”

이 지점에서 뭔가 모르게 슬프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저자가 처음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출간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답사 열풍이 불었다. 저마다 그 책 펼쳐 들고 책에서 소개한 곳들을 찾아 나선 발길들이 무척이나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저자의 본의와 다르게, 그 땅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바람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긴 나도 책이 나오기 전에 갔던 곳을 책이 나온 후에 다시 갔더니 아예 놀이터 같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 지난 해 모란이 활짝 핀 봄날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진행 차 강진에 갔다가 이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온 지도 꽤 되었으니, 그 이후 책에서 말한 곳들을 다시 한 번 찾아다니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그 땅과 살고 있는 사람들, 문화유산들과 만나고 갔는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일행들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그 땅과 사람과 문화가 어떻게 지내왔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그 길을 찾아 나선 독자들과 그 땅 사람들이 함께 생각해 보고, 지금 이후의 삶과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넘어 실천하는 만큼 만난다라는 마음으로, 정말 조용히 땅과 사람과 자연, 문화를 만나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훌훌 떠나는 그런 답사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나저나 정말 나물박물관이 생긴다고 해도 나물 씨가 마르는 일은 없어야 하고, 또 없을 것이다. 이 땅 나물들의 강인한 힘을 믿는다.

트위터에서 이 책에 대해 글 하나를 올렸더니 한 친구가 자세히 보지 않았다가 앞으로 그 안내처럼 더 천천히 다녀야겠다고 답을 해 왔다. 부록으로 ‘답사 일정표와 안내지도’를 수록한 것은 아마도 많은 독자들에게 앞의 긴 이야기를 직접 현장에서 확인해 보는데 좋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중에서 일러두기의 한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그건 ‘5. 답사지간 구간 거리의 소요시간은 시속 60킬로미터를 기준으로 삼았다’라는 것. 시속 60킬로미터.. 요즘 같이 전국 구석구석 도로가 잘 정비된 시절에, 시속 60킬로미터로 다니라는 말이 주는 어떤 느낌이 있다. 답사를 다니거나 여행을 하다보면 자꾸 속도를 내게 된다. 마치 무엇엔가 쫓기는 그런 느낌까지 주는 거친 발걸음 아니면 빠른 주행.. 그런 것으로 인해 오히려 마음과 정신의 속도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가 왜 길을 나서서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과 사람을 만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저자처럼 해박한 지식이 없이 마주선다 하더라도 마음을 집중해서 만나고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길을 나선 목적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답사에서든 여행에서든 만난 것을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가져올 수는 없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순간에 서서 조금이라도 변화한 자신 뿐일 것이다. 지식에 생각을 더하고, 생각에 애정을 더하고, 그래서 큰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위치와 삶의 방식을 되짚어 다듬고 정화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은 거기 그대로 두고, 자신만을 잘 챙겨 돌아오는 것으로 길을 떠나고 마무리하는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부록으로 실린 '답사 일정표와 안내지도. 부여 것만 가져왔다>

책 읽기를 마치고 나니, 정말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요동친다. 지난 주말에 외규장각 의궤 귀환 환영대회가 열린 경북궁에 갔었다. 본 행사가 열린 근정전 등을 둘러보지는 못하고 이송 행렬을 보기만 했다. 시간이 되면 경복궁을 좀 더 자주 가 보야겠다. 등잔 밑이 어두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면 끝으로 두 가지 바람을 적어본다. 우선 광화문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차도로 끊어져 있는 것이 보면 볼수록 너무 아쉽다. 광화문에서 광장으로 그대로 이어져 그대로 걸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프랑스에 있던 책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처럼, 박물관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탑이나 불상 같은 것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면 좋겠다. 문화유산은 장소성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들이 마땅히 있었던 자리에 있는 것이 좋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들이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면 우리의 답사길도 더 흥미롭지 않을까?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가지지 않았을까? 근 한 달 여 곁에 두고 읽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인생도처유상수>를 이제사 손에서 놓는다. 즐거운 답사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