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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도협컬럼] 학문의 신실증주의적 신드롬을

[칼럼] 학문의 신실증주의적 신드롬을 경계함

우리 학문분야에 첨단과학기술을 접목하려는 학자와 연구자들의
노력이 잇따르고 있다.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목표에 달
성하려는 노력과 방법은 다양할수록 바람직하다고 본다. 학문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특정 영역에의 편중과 학
문적 본질의 일탈이다. 근래 우리 학문분야에서 맹목적인 정보학
선호현상과 타학문의 기능주의적 현상을 우리 학문의 본질인양
착각하는 풍조가 문제다. 오늘날의 학문이 그 본질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주변학문과 어우러진 학제적 방법을 수용하는 현상은 일
반화 되었다고 본다. 그러기에 연구방법론에서 적용하는 통계처
리방법과 컴퓨터기술의 응용 등이 모든 학문의 기초적 공통과목
처럼 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주변학문들은 주
변학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어야지 고유학문의
본질로 추구될 수는 없다. 더욱이 주변학문분야에서도 아직 실용
화되지 않은 실험실내의 연구개발단계의 특정 이론과 기법이 우
리학문의 응용과 실행단계로 무작정 도입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다. 현대사회사상 가운데 자연과학의 발달에 자극을 받은 신실증
주의(Neopositivism)사상이 있다. 이 사상에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주요기술은 무어(George E. Moore)의 언어분석과 화이트헤드
(Alfred N. Whitehead) 등의 기호논리학이다. 그 원리는 오늘날
우리 학문분야에서도 일부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진리를
규명하기 위한 명제를 세 가지로 국한하고 있다. 실증할 수 있는
명제, 실증 가능한 명제, 무모순의 명제 즉 수학적, 논리적으로
표현되는 자연과학적 해결방안을 문제 해결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정보문화현장인 도서관은 이용자들의 필요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사회 속의 조직체이다. 인간의 모든 형태
가 수학적,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설명될 수 없듯이 우리 학문도
그렇게 기계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본질이 아니다. 정보학이 정
보의 속성, 정보의 유통, 정보의 처리, 정보의 서비스를 주된 연
구영역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할 때 전문가 시스템이나 추론엔진
과 같은 인공지능의 기능주의적 방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분위기로 치달아가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더욱이 연구의 주제가 타분야 주제를 오도한 사실조차 느끼지 못
하는 일부 학계의 현실은 어떻게 변명될 수 있는가? 학문이 현장
보다 앞서 갈 수 있다는 일반적 상식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컴
퓨터는 커녕 전동타자기 한대도 갖추지 못한 도서관이 있다는 열
악한 현실을 강조할 생각은 없다. 전산공학에서도 첨단기술인 인
공지능적 접근방법만이 앞서가는 것 같은 신드롬이 극소수에 의
한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타학문분야의 첨단기술
이 연구개발과정이 아닌 실험평가를 끝내고 정착보급단계의 것이
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실용할 수 있는 국내의 도서관현장
주변환경이 성숙된 뒤에 자연스럽게 도입되어야 한다. 실천가능
한 현실적 방법이 확고히 갖춰진 후에 전통적 방법과 세대교체
되어야 한다. 배타적 신실증주의가 우리 학문의 기초와 본질을
호도하는 현상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동안 우리 학문과 현장은
일본어 세대에 의해 계속해서 유린되어 왔고 일개 사학자들에게
서 영향받은 본말전도의 아류에 많이 시달려 왔다. 최근 국적없
는 숭미주의적 (崇美主義的) 학문도 정리하기 힘든 상황에서 또
다시 신실증주의에 지배당하는 수난은 더이상 사양한다. 문헌정
보학이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인 한은!

김태승(경기대학교/문헌정보학과)

출처 : 圖書館文化 1993. 9/10월(34권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