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도협컬럼] 다시 방법론을 이야기할 때이다

다시 방법론을 이야기할 때이다

1993년을 보내면서 지난 몇 번의 도서관문화誌에 실린 칼럼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 중에서 특히 앵무새처럼 30년을 거듭 같은
주장만을 되풀이해 온 우리들의 문제를 지적한 이용남 교수의
1992.9 10월호 칼럼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성을 가진다. 그
칼럼에서 이제는 수준제시 차원에서 그런 수준에 도달하는데 필
요한 수단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간절한 견해를
밝힌 바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또 1년을 보내면서 똑같은
주장을 하고자 하니 가슴이 꽉 미어져 옴을 어쩔 수 없다.

올해는 '책의 해'이다. 국가적으로 책을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
고자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하기는 했다. 그 일을 맡은 '책의해
조직위원회'는 12월21일 성공적인 운영을 자축하면서 해체했다
고 한다. 그러나 우리 도서관계는 스스로 축하할 일이 별로 없
다는 것에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에게는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이란 난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올 하
반기 우리는 이 문제로 인해 한동안 휘청거렸다. 느닷없이 (실
은 꽤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기는 하지만) '독서진흥법'을 제
정하겠다고 공청회를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도서관계
의 앞날에 심각한 문제점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 그 법안 제정에
대해서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로 반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타협
을 진행해서 결국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이란 새로운 법을 제
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 또다시 예기치 못한 문제로 인
해 결국 해를 넘기고, 논의는 거의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튀어갈 지
예측불허의 상황이라는 것에서 아직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
다.

이 시점에서 그 동안의 법안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
해 들으면서 우리 도서관계가 이렇게 어렵게 당하고 지내야 하
는 내면적 요인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 이유는 우리 도서관계가 여태 말만 무성했지 어떤 문제
에 대해서건 제대로 움직여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년 우리
는 문제에 대해 불평하고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말은 많
이 했지만, 도서관현장에서는 과연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편적
발전의 수준을 넘어선 발전의 기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상
황에서, 과연 누가 우리들을 위해 어려운 일들을 해 주려고 하
겠는가. 출판계에서 애써 만든 좋은 책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하
는 도서관 능력으로는 과연 우리가 정말 우리 문화의 일부분을
튼튼하게 떠받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이용자들을 탓하
고 있기에는 우리들이 너무 게으르고 나태하지는 않았는가. 국
립중앙도서관조차 이제서야 공부방을 탈피하려고 하는 마당에
우리는 지난 수십 년을 거의 성과없이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
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화두'처럼 떨어진 뜨거운 불덩이인 법안
문제에 부딪쳤다. 이제 방법은 별로 없을 듯하다. 반드시, 그리
고 즉각적으로 여태껏 우리를 지탱해온 보수적이고 개인적이며,
집단에 안주하려는 성향에서 혁명적으로 돌아서야 한다. 우루과
이라운드가 타결되면서 국가적으로 전쟁상태처럼 요란한 마당에
우리는 그 동안 안주해 있을 수 있었던 도서관이 바로 전쟁터라
는 생각을 해야한다. 그래서 당당하게 우리들의 모든 노력을 기
울여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고 도서관인은 도서관인답게 행
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무척이나 낙후한
지금의 우리 일터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
는 한 우리의 일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 예산문제가 있다면, 지
방정부든 중앙정부든 가서 주장하고 이해시키고,따지고, 결국은
확보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공부방으로 이용하려는 이용자가 있
다면 설득하는 한편 도서관의 참모습을 보여주어 결국은 제대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는
훌륭한 도서관인이 되기 위한 노력도 강화해야 하고, 한국도서
관협회는 그런 노력을 적극 발굴해서 명실상부한 전문직이 되도
록 지원해야 한다. 도서관을 일터로 삼고 있는 우리 모두 각자
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부분에서 하나씩 싸워 개선해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 이런 모든
면을 통틀어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제는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
서는 반드시 정치라는 행위를 통해 모두에게 인정받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고 다같이 우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적 행동을 해야 한다.
정치란 아주 일상적 행위이다. 우리가 대통령선거에 참여하고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이다. 따라서 도서
관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이제는 정치적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
한 일이다. 도서관전문조직체들도 이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정치행위라는 수단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수단
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때에 비로소 우리는 지난 30년을 넘게
낭만적으로 주장해 왔던, 또는 불평하고 요구해 왔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우리 스스로 찾아내고 또 확보해 내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올 해 우리에게는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든 해였다. 언제까지 우리의 동지라고 생각해 왔던 출판
계에서 '독서진흥법'을 들고 나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제 더이상 머뭇거리거나 주저할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
졌다. 따라서 모든 도서관과 도서관인들은 분명하게 한가지 길
을 선택해야 한다. 계속해서 객체로 남느냐, 아니면 이제부터
다시금 우리 문제에 대한 주체로 나설 것이냐 하는 선택. 결국
우리는 방법적으로 정치적 수단을 택해야 한다.

이용훈(black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