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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읽기

수원 선경도서관과 관아처

며칠 전 수원선경도서관에 갔었다. 날씨가 좋아서 화성을 걸어 한 바퀴 돌아가니 기분이 상쾌하고, 봄을 한껏 즐겼다. 예정된 회의가 끝난 후에 나오려다가 도서관에서 아는 분을 만났다. 그래서 몇 번 갔어도 무심코 지나갔던중앙홀 벽면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1층 중앙홀 벽면이 부조로 되어 있다. 앗, 자세히 보니 예쁘고 멋진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도서관은 향토기업인 선경그룹(현재는 SK그룹)에서 창업자 故 최종건 회장의 애향 정신을 기려 건립해서 수원시에 기증한,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도서관을 건립 기부한 대표적 도서관 중 하나다. 1995년 4월 개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수원시는 경기도청도 있는 곳이고 해서 나도 여러 번 이 도서관을 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 중앙홀에 있는 부조를 제대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부조는 개관 당시부터 있었다고 한다. 조각가 이영학 님이 개관 준비과정에서 새겨 만든 것이라고 하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것이다. 마침 선경도서관이 2005년 <선경도서관 10년사>를 펴냈고, 그 책 있는 사진부분에 그 모습이 담겨져 있다. 다양한 그림과 글씨가 어우러진 부조인데, 어린이 글씨나 그림도 담아내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 도서관 직원께서 한쪽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는 새겨진글씨를 보여주신다. '觀我處'라고 쓰여졌다. 나를 돌아보는 곳이라는 의미일텐데.. 설명에 따르면 그것이 도서관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요? 자신을 바라보는 곳이 도서관이라고. 의미는 금방 이해가 되었다. 책을 보는 곳이 도서관인데, 책을 보기 위해서는 도서관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그곳도 찍고 부조 몇 곳을 찍어왔다. 그런 것을 알려준 사서께 감사한다. 역시 뭘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 다시 가면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그래서 혹시 그 글씨를 탁본해서 선경도서관 방문기념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물론 내가 제일 먼저 가지고 싶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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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처에 대해서 궁금해서 다시 찾아보니, 김형국 서울대환경대학원교수께서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행하는 <문화예술>이라는 책자에 쓴 글 '자신을 바라보다(觀我處)'라는 글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글 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럴즈음 연세대도서관을들릴일이있었다. 그림과 함께 나무에 새긴 옛현판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거기에내눈을사로잡는현판이 하나 있었으니 ‘관아처’(觀我處)라 쓰여 있었다. 단정하면서도 기운(氣韻)이 생동하는 명필임이 단박에 느껴지는글씨였다. 행서(行書) 맛이나는 해서(楷書) 글씨는중국 서화사상 희대의 명필 미불이었다. 글뜻이 더욱 내 마음을 파고 들었다. 도서관이 무엇인가. 책을 보는 곳이다. 책은 왜 보는가.‘ 자신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관아처는도서관의 다른 이름임을, 또한식자들에게 기대되는 세계관이란 다름아니라 자아정립의길임을깨닫는다. 동서양선현들이자신을꿰뚫어보기를강조한 것도 그런 까닭일 이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부터 불가에서는 ‘관자득’(觀自得)의 경지를 우러러 보고, 유가문화의 조선시대에 ‘관아재’(觀我齋)를 아호로 삼는 화원도 있었다.", 아 그렇구나.. 관아처라는 것이 여기서도 도서관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집에 관아처란 글씨 하나 걸어둘까? 그런데, 참 궁금하다. 요즘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아직 이 현판이 걸려 있을까? 나는 왜 그걸 본 기억이 없지? 아니 봤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게다.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었으니... 그러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네. 언제 연세대를 가면 찾아봐야겠다.

* 김형국 교수 글 바로가기


<선경도서관 10년사> 화보 부분. 이영학 선생께서 부조하는 사진도 있고, 기공식 등의 사진도 있다.



부조 중 하나인 '관아처'



아이가 그린 그림을 부조로 담았다. 너무 아름답다...



중앙홀 부조 일부



부조 중 화성을 새긴 것으로 생각된다.




1995년 9월 펴낸 <선경도서관 10년사>. 책 표지 바탕 그림이 아마도 부조의 밑그림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