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책 이야기

아침에 단편소설 한 편을 읽다 : `프린트 한 죄`

글을 올린 분이 제발 많이 퍼가서 읽히기를 바라고 계시니, 나도 여기에 가져온다. 아주 짧은 소설인 "프린트 한 죄"를번역한 글이다. 번역한 분이 소개한 내용을 보니 이 소설은 2006년에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던 것이라고 한다. 아니 <네이처>라면 그 유명한 과학잡지? 그런저널이 소설같은 형식 글도 싣나? 저자는 캐나다 사람으로 미디어 활동가이자 SF 소설가인 코리 닥터로우(Cory Doctorow)라고 한다. 꽤 유명한 작가라고도 한다. 아침에 짧은 소설 한 편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이 글은 진보넷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데, 직접 가서 보니까 몇 명이 댓글을 달아 두었는데, 그 중 한 분은 '번역자'를 '반역자'로 읽었다고 적고 있었다... 나도 그럴 뻔 했다. 저작권 문제에 있어 조금이라도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주장을 하면 마치 '반역자'처럼 취급되는 경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그냥 웃어야지.. 아니 어쩌면 '번역'은 그 자체로 '반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 진보넷 블로그 글 보러가기


--------------------------------------------------

오랜만에 짧은 단편 SF 한 편 번역해서 올립니다. 3-D 프린터와 지적재산권에 대한 짧은 단편 소설입니다.

‘프린트 한 죄’는 캐나다의 미디어 활동가이자 SF 소설가인 코리 닥터로우(Cory Doctorow)가 쓴 단편 소설로서, 2006년에 과학 잡지인 네이처(Nature)지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코리 닥터로우는 전자프론티어재단(the 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www.eff.org))의 활동가로서 저작권이나 특허권 문제에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SF 작가로서 발표하는 소설마다 여러 상을 휩쓸고 있는 떠오르는 젊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자신의 홈페이지(www.craphound.com)에 공개해서 누구든지 다운 받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으며, 본인이 직접 소설 내용을 녹음해서 mp3 파일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문 블로그들을 기웃기웃 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현재 가장 유명한 블로그 중 하나인 보잉보잉(http://www.boingboing.net/)의 운영자이기도 합니다.

아래 번역해서 올린 ‘프린트 한 죄’는 the Creative Commons license 라서 누구든지 비상업적으로 복제, 배포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각국의 팬들에 의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어, 폴란드어 등 10여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블로그에 올리기 전에 코리 닥터로우에게 메일을 보내서 한국에서 번역해서 배포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Of course, Sejin -- the Creative Commons license allows this!"랍니다.

코리 닥터로우는 지난 3월에 한국의 지적재산권 개악과 관련해서 boingboing에 ‘3진 아웃제는 남한의 기술 경쟁력을 박살낼 것’이라는 글을 올린 적도 있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boingboing.net/2009/03/29/south-korea-prepares.html


=-=-=-=-=-=-=-=-=-=-=-=-=-=-=-=-=-=-=-=-=-=-=-=-=-=-=-=-=-=-

프린트 한 죄

by Cory Doctorow

내가 여덟 살 때 경찰들은 아빠의 프린터를 박살냈다. 프린터가 뿜어내던 열기와 전자렌지에 식품 포장용 랩을 돌렸을 때 나는 것과 비슷한 그 냄새 그리고 아빠가 프린터에 신선한 찐득이를 채워 넣을 때 열중하던 모습, 프린터에서 갓 구워져 나온 물건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찰들은 문으로 들어와 곤봉을 휘둘렀고, 그중 한 명은 확성기를 들고 영장을 낭독했다. 아빠의 고객이 밀고한 것이었다. 정보경찰은 밀고자에게 행동 강화제, 기억 보충제, 신진대사 촉진제 같은 고급 약으로 대가를 지불했다. 그런 것들은 현금보다 더 가치가 있지만, 누구든지 집에서 직접 프린트해서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큰 덩치들이 부엌에 갑자기 들이닥쳐서, 휙휙 소리가 나도록 곤봉을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패고 온갖 것들을 부셔버리는 위험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경찰들은 할머니가 예전에 살던 나라에서 오실 때 가져온 여행 가방을 박살냈다. 소형 냉장고와 공기 정화기도 창문 밖으로 던져 부셔버렸다. 내가 기르던 귀여운 새는, 경찰이 큰 군화발로 새장을 짓밟아서 엉킨 프린트 전선 뭉치로 만들어버렸을 때, 새장의 한쪽 구석에 몸을 숨겨서 겨우 목숨을 보존했다.

아빠, 그들은 아빠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아빠가 체포되었을 때의 모습은 마치 럭비팀과 한 판 난투극을 벌인 것 같은 몰골이었다. 그들은 아빠를 문 밖으로 끌고 나가, 기자들에게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보여준 후 차 안으로 던져 넣었다. 경찰 대변인은 아빠가 해적판 밀매 범죄 조직을 운영하면서 최소한 2천만 개 이상의 밀매품에 대한 책임이 있고, 극악한 범죄자로서 체포시에도 불응하며 저항했다고 발표했다.

나는 거실에 남겨진 내 전화기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을 봤다. 나는 그 모습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지켜보면서, 어떻게, 아니 도대체 어떻게 우리의 초라한 단층집과 지독히 형편없는 살림살이를 보면서도 그걸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가 사는 집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프린트를 가져가 전리품이라도 되는 냥 전시해서 기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프린트가 놓여있던 부엌의 그 조그마한 성소(聖所)는 끔찍하리만큼 허전해보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납작하게 눌린 새장을 집어 들어 불쌍한 새를 구해준 후, 프린터가 있던 자리에 믹서를 올려놓았다. 믹서도 프린트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베어링과 구동 부품들을 새로 프린트해야만 하는 상태였다. 프린트가 있었을 때는 프린트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언제든지 분해하고 조립해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가 18살이 되었을 때 아빠가 감옥에서 나왔다. 그동안 나는 아빠를 세 번 면회했다. 내 열 살 생일과 아빠의 쉰 살 생신날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아빠를 마지막 본 것은 2년 전이었는데, 그 때 아빠는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였다. 아빠는 감옥 안에서의 싸움 때문에 다리를 절룩거렸고, 마치 틱 경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계속 고개를 돌려서 어깨 너머로 뒤를 쳐다봤다. 소형 택시가 우리를 예전에 살던 집의 현관에 내려주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집안으로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처참하게 망가지고 절룩거리며 해골처럼 삐쩍 마른 아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래니.”
아빠가 나를 앉히며 말했다.
“난 네가 영리한 애라는 걸 잘 알아. 이 늙은 애비가 어디를 가야 프린트와 찐득이를 구할 수 있을지 너는 알고 있겠지?”

나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는 눈을 감고 말했다.
“아빠, 아빠는 감옥에 10년 동안 갇혀 있었어요. 장장 10년이라고요. 믹서나 약품, 노트북 컴퓨터, 이쁘게 생긴 모자 따위를 프린트 하느라 또 10년을 감옥에서 보낼 작정이세요?”

아빠가 씩 웃었다.
“래니, 난 바보가 아니야. 그동안 교훈을 얻었어. 모자나 노트북 컴퓨터 따위는 감옥에 갈 정도의 가치가 없어. 난 다시는 그런 쓸데없는 허접 쓰레기를 프린트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아빠는 찻잔을 들고 와서, 위스키라도 되는 것처럼 홀짝 대더니 쭉 들이키고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아빠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래니, 이리 와봐. 너한테 긴히 해줄 말이 있어. 내가 감옥에서 10년을 허비하며 결심한 걸 이야기 해줄게. 이리 와서 이 어리석은 애비의 이야기를 들어봐.”

아빠에게 화를 낸 것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아빠는 몹시 들떠 있었다. 누가 저 모습을 본다면 아버지가 그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뭔데요. 아빠?”
나는 아빠에게 가까이 기댔다.

“래니, 나는 이제 프린터를 프린트 할 거야. 더 많은 프린터를 만들어내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거야. 그거라면 감옥에 갈만한 가치가 있어. 그거라면 어떤 일을 당해도 할 만한 가치가 있어.”

번역자 : neoscrum(http://blog.jinbo.net/neoscrum)
원문 : http://craphound.com/?p=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