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월 2회 발행하는 <기획회의> 2006년 5월 176호의 '집중서평'에 기고했던 글이다. 사라진 책과 도서관의 역사를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인류 역사 동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벌여왔는지를 알게 된다. 다시 이 책을 생각해 본다.
사라진 책의 역사 / 뤼시앵 폴라스트롱 지음, 이세진 옮김. 동아일보사, 2006.
읽는 내내 가슴 아팠지만, 그래도 폐허에서 희망도 건지다
『사라진 책의 역사』
이용훈_한국도서관협회 기획부장, 도서관문화비평가 blackmt@hitel.net
한 때 사라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는 말이 멋지게 느꼈으나 이 책을 읽고는 그 말이 오히려 고통스럽다. 책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꼼꼼하게 말해주고 있다. 사라진 책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사라진 도서관, 파괴된 도서관 이야기라서 더 고통스러웠다. 최근 수많은 애서가들 이야기를 담은 묵직한 책 『젠틀 매드니스』(N.A. 바스베인스, 표정훈․김연수․박중서 옮김, 뜨인돌, 2006)가 출판되어 한동안 책을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 이야기에 한층 고무되었었는데, 누구는 애써 찾고 아끼고 보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데, 그렇게 모아진 책들을 담은 도서관들은 어느 날 ‘느닷없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을 접하고 보니 인간 세상 이토록 부조리할 수 있을까 싶다. 원래 세상이 이처럼 부조리하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으나 지금까지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책과 도서관이 파괴되어온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도서관을 일터로, 삶터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픈 과거는 꼼꼼하게 읽어냄으로써 다시는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지금 이 책『사라진 책의 역사』를 읽어야 할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지적 자유를 위한 투쟁의 공간, 도서관
사람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로 권력자들이 책을 파괴한 이유는 대부분 “책을 소유한 자가 세상을 소유한다”는 이유로 자신만이 더 많은 책을 가지고자 다른 사람들의 책을 빼앗거나 파괴한 것이고, 또 하나는 “내 원수의 책도 나의 원수다”라는 생각에서 자신이 제압하고자 한 적의 책까지도 모조리 이 세상에서 없애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역자 이세진은 말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자연재해, 사람들의 무지, 거기에다 종교적 입장 등도 책을 사라지게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책을 없애기 전에 책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왜 사람들은 책을 쓰고 만들기 시작했을까? 물론 고대에는 책은 하나의 권력이었다. 책을 가진 사람은 시대의 지혜를, 그래서 시대를 통치할 수 있는 권위와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대량으로 책을 생산할 수 있게 되자 지식은 급격하게 대중 속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새로운 지식층으로서의 일반 시민계층이 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지식이 급격하게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권력은 분화되고, 시민들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권력을 장악한 시민세력은 다시 더 많은 지식의 생산과 대중적인 보급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인쇄술과 대중교통과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의 발달은 지식과 권력의 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지식을 공유하고 활용하기 위한 사회장치로서의 도서관이 주목받는다. 근대 도서관은 이렇듯 권력과 지식의 세속화 또는 시민주도적 영역으로의 중심 이동의 과정에서 생겨난, 시민사회 형성을 위한 지적 자유를 위한 투쟁의 성과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늘 끊임없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다툼은 이어졌고, 그 와중에서 도서관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 투쟁의 공간이 되고, 생성과 파괴를 되풀이 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시를 가진 장미와 같은 책과 도서관의 파괴사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책과 도서관에 대해 다시 한 번 그 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숱한 책이 파괴된 구체적 사례를 통해 우리는 사라진 책들이 지금 우리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이 책이 서술하고 있는 슬픈 책과 도서관의 역사는 마치 가시를 가진 장미와 같다고나 할까. 저자 뤼시앵은 이 책에서 고대 점토판을 기록의 수단으로 이용한 시절에서부터 책을 디지털로 만들고 있는 오늘날까지 서양에서 책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어디에서, 얼마나 사라졌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책 뒤에 수록된 도서관 파괴사 연표에 쓰고 있는 것처럼 기원전 1358년 테베 도서관들이 파괴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2003년 미국의 ‘해방작전’으로 이라크의 거의 모든 장서가 약탈당하거나 화재로 소실된 이야기까지를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그 방대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언급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마치 천일야화처럼 저자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도 안타까울 사라진 책과 도서관 이야기를 차분하게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평소 알고 있을 역사적 사실, 즉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라든가, 진시왕의 분서갱유, 근대 이후 숱한 전쟁의 역사 속에서 빠져 있었던 책 이야기는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역사의 조각을 맞출 수 있도록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다. 수메르인들이 흙을 이용해서 만든 점토판에 기록을 시작하면서 만들어 낸 귀중한 기록물들이 지금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상황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발견으로 사라졌던 책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지 기대를 가지게 한다(2장). 그 이후 파피루스에 글을 쓴 이집트와 아테네, 로마와 콘스탄디노플 시대는 더 많은 창조와 파괴의 역사를 보여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양 지식의 근간들은 지금도 숱한 의문과 아쉬움을 드러낸다(3장). 초기 이슬람 시대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세상 이야기일 것이다. 스페인의 이슬람 왕조 알 안달루스와 중세의 동방 이슬람 이야기는 다소 낯설다. 그러나 세상을 만들어 낸 중요한 지식들 가운데 이슬람에서 태어난 것들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이슬람 세계의 책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것이다(4장). 유대 사람들을 ‘책의 사람들’이라고 불린 유대인들의 문학작품들이 당한 짧은 수난의 역사는 오히려 너무 간략하다(5장). 이어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는 너무 익숙한 종교재판 이야기가 가득하다. 금서목록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신세계에 대한 욕망으로 찾아 나선 낯선 땅 잉카나 페루, 멕시코 등에서의 정복자들이 무자비하게 행한 책 파괴사는 다시 오늘날 이라크 등지에서의 책과 도서관 파괴 역사와 겹쳐져 전율을 느끼게 한다. 서구 중세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잔뜩 늘어난 책들을 공교육을 위해 써야 할 것인가, 아니면 처분해버릴 것인가’(248쪽)라는 의문은 혁명과정에서의 책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냈지만, 이전 시대의 사상과 지식을 담고 있는 책과 도서관은 전제정치에 대한 복수의 대상으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저자의 지적 기반이 서구에 있다 보니 서구의 역사는 상세하다(7장). 책과 도서관 파괴는 서구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20세기 이전의 아시아, 중국과 인도, 일본의 역사는 아주 짧게 풀어내고 있다(6장). 다음으로는 더 생생하게 최근의 역사 속에서 아픈 가시들을 찾아 꺼내 보여준다. 전쟁은 책과 도서관에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세계 곳곳에서의 크고 작은 전쟁은 인류나 근대국가가 성장하는 과장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하기에는 남긴 상처가 너무 크다. 책과 도서관의 영역은 더욱 그렇다. 나치즘은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면서 책과 도서관도 빼놓지 않았다. 사서들까지 대대적으로 나서 책을 파괴했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놀랄 뿐이다. 그리고 소련과 중국, 캄보디아, 스리랑카, 카슈미르, 쿠바, 프랑스, 아프리카, 발칸 반도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이르는 전세계적인 책 파괴 현상은 독자를 절망에 빠지게 할 정도로 어지럽다(8장).
오늘날에도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과거를 넘어 현대 사회 속에서 책과 도서관이 처한 위기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전쟁이 아니라도 인재나 자연재해도 어디서나 책을 없애 버린다. 특히 그 숱한 어려운 시간을 살아남아 전해져 온 귀한 책들이 한 순간 화재로 사라졌거나, 때로는 배에 실렸다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황당하기까지 하다(9장). 현대에 이르러서는 도서관들이 의도적으로 책을 지하에 가두거나 파쇄해 버리는 일을 고발한다.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복사본이나 다른 물질(디지털매체)로 바꾸는 희한한 패러독스의 시대라고 질타한다(10장). 나아가 디지털 시대 책과 도서관이 처한 불안에 대한 저자의 우려는 이 책이 결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처럼 독자들이 책을 읽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11장). 후기를 빙자해 다시 꺼낸 알렉산드리아 이야기(12장)나 부록에 수록한 ‘위대한 작가들의 합의 : 도서관은 파괴되어야 한다’(부록Ⅰ)나 ‘사라진 책들의 목록 조사 이야기와 마무리를 위한 전설’(부록Ⅱ)은 그나마 수 천년을 이어온 책과 도서관 파괴의 역사 속에서 인류가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자신의 일상과 생각, 지식과 사상을 제대로 기록하고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이미 사라졌다고 알려진 책과 도서관이 어딘가에는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인류가 기록수단을 발명하고 책이라고 하는 매체에 담아 남기기 시작한 이래 숱하게 벌어진 창조와 파괴의 역사를 담아냄으로써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과 나와 같은 도서관 사람을 붙잡고 있다.
몇 가지 아쉬움
이 책은 아시아 지역 역사에 대해 일부 서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서구 중심적 역사에 충실하다. 그런 점에서 이춘희 교수가 추천사에서 우리나라 책 파괴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담아낸 것은 다행이다. 최근 책에 관한 책들이 다수 번역되고 있는데 우리의 책 문화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문제는 중요하다. 물론 우리들로서는 아직 책 문화나 역사를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자료들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서구처럼 다양한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과 도서관 문화를 충실하게 만드는 일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도서관과 사서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직업적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책을 파괴해 온 중요한 인재(人災)의 요소의 하나인 검열과 금서의 문제는 좀 더 집중적으로 검토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책에서 종종 언급되기는 했지만 검열은 책과 도서관 파괴 역사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문제이다. 누군가 투망으로는 물고기를 모두 잡을 수는 없지만 낚시로는 물고기 씨를 말릴 수 있다고 했는데, 거대한 파괴 속에서도 책과 도서관은 살아남았지만 검열은 두고두고 새로운 창조의 의욕을 고사시킨다는 점에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검열과 금서에 대해서는 이미 몇 권의 책이 출판되었기에 이어 읽기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도서관이라고 하는 공공의 영역에서 검열과 금서의 문제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정현태의 『공공도서관의 지적자유』(한국도서관협회, 2002)도 읽어볼 만하다.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도서관에 대해 가진 인식, 즉 21세기 지식정보시대를 말하면서도 우리는 도서관이 어떤 책을 소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독서실로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서관이 어떤 책을 소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없다. 도서관이 구입하고 소장하는 책은 과연 어떤 책이어야 하는가? 대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보는 책이 무엇인지 말하기 이전에 과연 어떤 책들을 소장하고 있는지, 그 책들은 어떻게 도서관에 들어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제는 한 번 사회적 관심을 보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는 왜 숱한 권력자들이 도서관을 파괴하고자 애썼는지를 말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의 근현대 역사 속에서 어떤 도서관이 사라졌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함께 풀어볼 사회적 과제로 제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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