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파출소를 어린이도서관으로 빌려달라는 정책 제안...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도서관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된다. 어제 오전에 KBS '5천만의 아이디어'라는 프로그램 연말 특집을 보다가, 그 프로그램에서 지난 7월 4일 방송된 8회분에서 '빈 파출소를 어린이도서관으로 빌려주세요!'라는 내용의 시민제안이 방송되었고, 정책제안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지난 여름에 이런 내용이 방송되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은데, 왜 당시 이 방송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나 생각,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서 되짚어 보는 시간에 정책제안으로 채택된 내용들이 나열되는 중에 이 제안이 있는 것을 보고 다시금 그 내용과 제안 채택 이후가 궁굼해 졌다.
다시 보기로 보니까 내용은 간단하다. 제주도 박길복 씨라는 분이 제안한 제안으로 말 그대로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빈 파출소를 어린이도서관으로 쓸 수 있도록 '빌려 달라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같은 시민제안에 대해서 시민 패널 100명이 판단을 해서 80명 이상이 좋다고 평가를 하면 정책제안으로 채택되고, 그것은 행안부를 비롯한 정부 관련부처로 넘겨져 정책으로 채택할 수 있는지 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그런 실용성을 갖춘 프로그램이다. 빈 파출소를 어린이도서관으로 빌려달라는 시민제안은 최종적으로 시민패널 100명 중 81명이 지지를 해서 정책 제안으로 채택되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 이 제안을 검토는 하고 있는 것일까? 왜 나는 방송이 된 지 5달이 넘은 지금까지 이 제안이 정부 내에서, 아마도 검토를 한다면 당연히 도서관 정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이 주된 역할을 할텐데.. 내가 요즘 정책 부분에서 듣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없어서인가?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좀 아쉬운 점은 방송 중에서도 여러 전문가, 즉 어린이도서관 전문가나 건축가인 정기용 선생 등의 인터뷰가 있었고, 자문위원들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정작 도서관 부문 전문단체 관계자나 정책 담당자의 이야기는 없었던 것... 이미 정부에서도 여러 어린이도서관이나 작은도서관 관련 정책을 입안 추진하고 있고, 도서관 부문에서도 전문단체에서도 이 문제에 결코 무관심 하지 않는데..
나는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도서관에 대해서 시민들이 생각을 좀 더 넓게 했으면 한다. 물론 어린이만을 위한 도서관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 기적의 도서관이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사립 어린이도서관 등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공공부문에서의 도서관 서비스의 기반은 공공도서관이다.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도 기본적으로는 전국 각 지역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공공도서관에서 담당할 몫이다.그래서 전국 600여개가 넘은 공공도서관에는 대부분 어린이를 위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공공도서관이 매년 수 십 개 관이 새로 지어지고 있다. 기존 공공도서관도 리모델링 등을 통해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를 위한 별도의 도서관을 계속 확장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고 객관적 검토가 필요하다. 거기에 전국 수 천 개 초등학교에 설치된 도서관도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에서 공공도서관 못지않게, 아니 공공도서관보더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 각 교육청과 학교에 이미 책임이 부여된 공공도서관과 (초등)학교도서관 설립(설치) 및 운영 책임을 제대로 하는 것을 통해서 어린이들에게 좋은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아직 그런 공적이고 강제적 책임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어 어린이를 위한 좋은 도서관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 해결의 핵심은 공공도서관이나 (초등)학교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런 정책 방향 안에서 어린이를 위한 전용 도서관의 필요성과 실제 설립(설치)와 운영의 문제가 검토되고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 마치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과는 별개인 것처럼 인식되고 추진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또 방송 중에서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도서관과 관련한 이야기 중에서 빈 파출소를 이용하는 것이 새로 건립하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물론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이 방법은 잠시 파출소 건물을 '빌려' 쓰는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한한계가 있다는 점을 좀 간과한것은 아닐까 한다. 만일 경찰 쪽에서 그 건물을 다른 용도로 쓰고자 한다면건물을 비워 줄 수밖에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린이도서관은 어디로갈 것인가? 도서관은시간을 통해서 자료나 서비스를 축적하는 기관인데, 가장 기본적인 건물이나 공간을 언제까지 쓸 수 있는지가 조금이라도 불안하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 위해 시간과 자원을 축적해 갈 수 있을까? 물론 도서관이라고 해서 꼭 자기 건물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이면독립적인 공간이나 건물을 가지는 것이 우선 고려되면 좋겠다.또 기존 어린이도서관들이 운영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책을 구비하고 인력을 운용할 재원이 부족한 것이다. 그에 대해서도부족한 책은 기부를 받아서 늘리고, 부족한 인력은 자원봉사로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정말 그럴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이나 학교에 이미 도서관을 공공의 비용으로 설립해서 운영할 책임이 부여되어 있는데, 그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라고 요구하고 실행하도록 주민의 힘으로 강제하면 더 안정적인 도서관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써 권리를 가진 주민이 스스로 의무를 수행하는 자리에 앉으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또 정말 어린이들이 좋은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많이 읽히고자 한다면 도서관을 몇 개 더 만드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근원적인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그건 어린이들에게 놀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좋은 어린이도서관이 제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런데 거듭 생각해 봐도, 도서관에 관한 내용이 공용 방송을 타는 과정이나 그 이후에 있어서 도서관계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조차 궁금한 상황은 좀 어색하다. 나는 빈 파출소를 어린이도서관으로 빌려달라는 시민제안이 제출되고 그것이 한 공영방송 프로그램에서 정책으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평가와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진정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 제안이 정책제안으로까지 지지받은 이후 과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내용이 정말 궁금한데, 그에 대해 지금까지도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제 연말 마무리 방송에서도 이 제안이 채택된 이후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어린이를 위해 좋은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일은 교육과 같이 국가 백년대계를 이루는 중요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 빈 파출소를 어린이도서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러한 정책 구현의 한 방법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도서관 정책의 중심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여된 사회적, 법적책임을 충분히 인지하고공공재원을 투입해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공공도서관 활성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도서관 서비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주권자로서 강력하게 그 시행을 요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어렵고 입장이 다양할 때일 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자원과 역량이 부족할 때에도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가장 핵심되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어린이에게 좋은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대해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도서관계와 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무엇이 기본이고 원칙인가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 할 것이다.
* KBS '5천만의 아이디어' 중 '빈 파출소를 어린이도서관으로 빌려주세요!' 방송 다시보기로 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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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방송 다시보기 화면에서 가져온 관련 방송내용임)
시민 제안 하나. 빈 파출소를 어린이도서관으로 빌려주세요!
2003년, 파출소 통폐합 후 파출소는 치안센터로 변신!.
집단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자 개편을 감행했다..
하지만 1500여개의 치안센터 중 일부가 텅 빈 채 방치되고 있다는데....
이 건물을 어린이 도서관으로 빌려준다면 어떨까?.
아이들이 마음껏 책을 읽고, 거기다 경찰에게 받는 안전교육은 보너스!
문화 시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의 지방 중소도시를 시작으로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문화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제안에
100인의 국민평가단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 이 그림은 방송 소개 내용 중 일부를 갈무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