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함석헌 선생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읽으며 기축년을 보낸다.

도서관문화비평가 2010. 2. 13. 08:24

혜화동을 종종 다니지만, 목적한 곳을 찾아 빠른 길로 다녔기 때문에 길가에 무엇이 있는지 자세히 보지를 않았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인가 길가를 정비했던 것 같은데.. 그 때 생겼나, 얼마 전 찬찬히 걷다가 그곳에 시비가 몇 개 세워진 것을 보았다. 그 중 하나가 함석헌 선생님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다. 다시 한 번 그 시를 찾아 읽는다.. 요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함석헌기념사업회는 함석헌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대학로에 시비를 세우기로 종로구청과 합의한 후 시비에 새길 시를 고르던 중 이 시의초고를발견했고 한다. 이 시는 1947년 7월 20일 쓰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함 선생께서 같은 해 3월 월남한 후 서울에서 쓴 것이라 한다. 모두 8연으로 되었으나 필자가 4연과 마지막 연을 삭제한 상태로 남아있다고 한다. 나도 이 시를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본다. 그리고 2009년 기축년을 보내는 마지막 날, 정말 나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이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본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救命袋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不義의 死刑場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